2017년 4월 4일 화요일

노르웨이 새 화폐

올해 여름부터 노르웨이 화폐가 바뀝니다.

한꺼번에 다 바뀌는 건 아니고 시범적으로 100 노트와 200 노트가 먼저 바뀌고
내년에 나머지가 다 바뀔 예정이에요.

노르웨이도 중앙은행에서 화폐발권을 하는데...
신권 디자인이 확 바뀌었습니다.

그 전에는 다른 나라 지폐와 마찬가지로 위인들을 위주로 디자인 되었는데
이번에는 위인들 대신 노르웨이 자체를 담았습니다.

노르게 은행에 따르면 전면에는 노르웨이 해양에 관한 역사를 나타 내었고,
뒷면은 바다와 바람의 모양을 추상화했다고 합니다.

뒷면의 큐빅모양의 패턴은 기존에 없던 정말 독특한 디자인인것 같네요.

뒷면도 뒷면이지면 200녹 지폐의 대구 그림은 정말 압권입니다.



각 지폐의 뒷면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네요
  • 50: The sea that binds us together (우리를 함께로 결속시키는 바다)
  • 100: The sea that takes us out into the world (우리를 세계로 나아가게하는 바다)
  • 200: The sea that feeds us (우리를 먹여 살리는 바다)
  • 500: The sea that gives us prosperity (우리에게 번영을 주는 바다)
  • 1,000: The sea that carries us forward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바다)
어떻게 공감하시나요?
Norway krone

Banknotes in Norway


Norwegian money

구권과 다르게 신권은 일반 종이가 아닌 면?종이에다 프린팅을 하여서 
그 질감? 촉감? 이 훨씬 좋다고 하네요.
이건 뭐 나와서 느껴봐야 하겠네요.
보안에도 보다 많은 신경을 썼다고 하니 위조문제가 붉어지는 일은 없을 듯 합니다.

그리고 지폐한장당 대략 0.55 녹의 제작 비용이 들어간다고 하네요.
물가도 비싸지만 지폐도 비싼 나라네요.

사진출처: Norges Bank

위대한 도전: 패들링으로 스카게라크 해협 종주(From Denmark to Norway)


SUP 그 저 해변에서 즐기는 수상 레져 인 줄 만 알았는데...

이것으로 130km가 넘느 해협을 종주 할 생각을 하다니 정말 대단하네요....

비록 아쉽게 도전에는 실패했지만

그 도전정신과 용기에는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네요.



저의 목표는 노르웨이 자전거 종주 인데....
올 생에는 가능 할련지...ㅎㅎㅎㅎ

2017년 4월 3일 월요일

Oslo free pass on 23rd April 2017


유럽 도시 여행을 할때 항상 하는 고민 중에 하나가
방문할 도시의 자유입장권 (PASS) 구입여부 입니다.

모든 관광지의 입장이 가능하고 때로는 교통비까지 포함되기도 해서
매력적인 상품이지만,

패스가격이 만만치 않죠?

그리고 내가 가고싶은 곳 뿐만 아니라 별 관심없는 관광지도 들어가 있어서

이게 관연 실용적인가? 가성비가 좋은가?에 대해서 항상 고민하게 만듭니다.

하지만 4월 23일에 오슬로에 방문 하실 여행객분들은

잠시 이런 고민을 덜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일 년에 한번 연례행사로써 오슬로 시에서는 
오슬로시민을 위한 공짜 패스를 나눠주는 행사를 진행합니다.

오슬로 시민이 아니어도 신청가능하니 걱정마시고요.

참고로, 오슬로 패스만 있으면 오슬로 내 모든 관광지와 박물관 
그리고 교통편 (트램, 버스, 보트, 기차: 단, Zone 1 내)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오슬로 패스에 대한 자세한 사용안내는 아래 링크를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오슬로 프리 패스 신청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온라인 신청 (사전 접수, 2017-04-03 이후부터 가능):
아래의 링크에 클릭하여 들어가셔서


글 중간즈음에 있는 (아래 이미지 하단에 위치) 설문 조사지를 채워 주시면 됩니다.

우편 번호 적는란이 나오는데
구글맵에서 오슬로 우편 번호 한 곳을 찾아서 적어 주시면 됩니다.
예, 0050, 0154 등등.

신청이 완료되면 4월 23일 전에 코드번호가 담긴 메일을 보내준답니다.
정확히 언제 메일이 보내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답니다.

핸드폰에 "OsloPass" 앱을 설치해서 실행해 보시면
코드 넘버를 넣는 곳 이 있습니다.
이 곳에 받으신 코드를 넣으면 
4월 23일에 사용할 수 있는 Oslo Free Pass가 활성화 됩니다.

2. 사전 방문 신청 (4월 7일부터 가능)

4월 7일 부터 오슬로 중앙 역에 위치한 "Oslo Visitor Center"를 찾아가시면
종이로 된 오슬로 패스를 받아 보실 수 있습니다.

다른 지역 부터 훎고 오슬로로 다시 돌아 오시는 분들에게 적당할 듯 하네요.

Oslo Visitor Center 위치는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됩니다.



3. 당일 방문 신청

4월 23일 오슬로 투어 예정이신분은 제일 먼제 시청을 찾아주세요
이 날 9시부터 오슬로 패스 무료 배포가 있으니 지체없이 찾아가시면 됩니다.
긴 줄이 예상되는 미리 가시는 것을 권장 하지만
좀 늦더라고 상관없어요
줄이 생각보다 빨리 줄어듭니다. 

그럼 모두들 즐거운 오슬로 투어를 하시길 바랍니다.


2017년 3월 26일 일요일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유럽에서 스위스와 거의 대등할 정도로 경제가 좋으며 부정부패도 적은 개념국가다. 하지만 이미 가입 결정을 하고도 국민투표 부결로 두 번이나 걷어찬 경력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가입하기 어려운 이유는 노르웨이의 경제 수익에 관련된 것이다. 노르웨이는 수산업이 자국의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럽 연합에 가입하면 회원국의 경제수익 일정부분은 유럽 연합국에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라는 조항을 지켜야 하는데, 이 조항이 자국의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상당한 수준의 어업량 쿼터 제한과 배타적 경제 수역을 다른 회원국들과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이 점을 가장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 
노르웨이 : "마음껏 잡지도 못하고 거기다 일터까지 나눠갖자고?? 내가 그런 미친 짓을 왜 해!?"
거기다 
북해 잭팟이 터지기 이전의 노르웨이와 수산업에서는 대등한 경쟁력이 있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14]이 이러한 이득을 버리면서까지 가입했는데 이 조항으로 인하여 결국 두 나라의 경제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노르웨이는 잘 알고 있고, 유럽 연합에 가입한다면 당연히 노르웨이의 수산업 관련 수입을 유럽 연합에도 나눠주어야 하므로 노르웨이가 가입하겠다고 표명하지 않은 이상 가입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없다. 광대한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진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어업 생산 쿼터로 자국내 수산물 수요를 감당 못해 노르웨이에서 생선을 수입해다 먹으니 노르웨이 입장에서는 더더욱 가입이 절실하지 않은 상황.
물론 노르웨이에서도 수산물 및 석유 자원의 고갈 대비 등을 이유로 자국의 EU 가입을 지지,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옌슨 스톨텐베르그 전 노르웨이 총리의 경우 노르웨이의 EU 회원국 가입을 지지하고 있다.

http://blue2sky.tistory.com/1317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097&l=422368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75171

노르웨이 제헌절 5월 17일




5월 17일은 노르웨이의 '국가의 날' 로서 1814년에 Eidsvoll에서 
최초로 헌법이 제정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참고로 노르웨이는 유럽에서 최초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헌절을 공포한 나라입니다. 

이 헌법 제정으로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지배에서 독립하기를 희망했지만... 
힘없는 약소국이 마음 같이 되는 일이 잘 있나요?

같은 해에 덴마크와의 거래?에 성공한 스웨덴에게 병합되고 맙니다. 
물론 저항했지만 스웨덴의 침략으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죠.
그래도 스웨덴이 양반인지라 노르웨이와 스웨덴과 연합정부를 꾸렸지만 
스웨덴에 정복 상태임을 부인 할 수는 없었습니다. 

 노르웨이 헌법은 스웨덴과의 병합 후에도 실효를 유지했고 
1905년 6월 노르웨이가 덴마크의 칼 왕자를 데려와 국왕 호콘 7세로 추대하면서 
완전한 독립을 다시 꾀했습니다. 
이로 인해 전쟁의 위기에 다시금 빠지나 했으나 
스웨덴이 전쟁을 포기하면서 6월 7일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됩니다. 
사실 호콘 7세는 스웨덴 국왕 칼 15세의 외손자입니다. 
혈연으로 인해 전쟁을 피한 경우네요. 
이 것을 알고 호콘 7세를 왕으로 추대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신의 한 수인 셈이였네요.


 5월 17일을 처음으로 기념한 것은 1840년대였는데
 노르웨이 낭만주의 운동을 이끈 시인 헨리크 아르놀 베르겔란 (Henrik Arnold Wergeland) 
이 이날을 국경일로 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이 나라의 자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이 날은 화려한 의전이나 힘과 권위를 과시하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한 기념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5월 17일은 어린이들에게 바쳐진 날이어서 더욱 특별한 것 같습니다.

5월 17일이면 노르웨이 국민들은 자랑스러운 노르웨이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데
행사는 보통 밴드들이 꾸미는 대규모 퍼레이드로 시작 됩니다.

 노르웨이 전역에서 바네토그 (Barnetog: 어린이 기차) 이라고 불리는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국기를 들고 거리와 광장으로 모입니다.

오슬로의 경우는 또한 왕과 왕가 사람들 또한 시민들에게 인사를 나누기 위해 왕궁에서 나오는데 
많은 국민들이 국기를 흔들며 왕가 사람들을 맞이하면 환호합니다.

베르겐의 경우 만화 공연단과 북 치는 밴드가 퍼레이드에 포함이 됩니다. 그리고 조정경기와 저녁에는 불꽃 놀이도 있습니다.

이 처럼 도시마다 제헌절을 기념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고 소방관, 스포츠팀, 학생회 등과 같은 다양한 조직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퍼레이드를 준비합니다.


어린이들과 어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나(Bunad)라고 불리는 전통의상을 입는데
 이날의 행사을 더욱 그림 같은 풍경으로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부나는 지역에 때라 다채로운 색깔과 스타일이 있습니다.

여성들은 마루에 끌리는 길이의 화려한 색감이 있는 모직 드레스와 하얀색 셔츠, 앞치마, 정교한 레이스와 자수가 놓인 코르셋을 입고 액세서리로 단장하고.
소년들은 아버지의 복장에 맞춰 무릎까지 오는 양말과 플러스 포스 바지와 조끼를 입습니다.
반면에 루스(RUSS) 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이 날에 맞춰 빨갛고 파란색의 작업복을  입습니다.

한편 이 날은 어디를 가든지 아이스크림 판매상으로 북적한데.
 5월17일은 어린이 모두가 먹고 싶은 만큼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되는 날 이기도 합니다.
이 에 보통 5배에서 10배는 높은 판매율을 기록한데고 하네요.


칼마르 동맹

칼마르 동맹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inlee96&logNo=220788716962

노르웨이의 독립 역사


오늘은 노르웨이의 독립 역사에 대한 글을 써 보려합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 밀려 힘을 못 쓰던 이 나라는 어떻게 세계 부국으로 성장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가 될 수 있게 배경 지식 정도로써 글을 써 볼까 합니다.

노르웨이는 1인당 GDP는  69,712 달러(IMF 2016녀 4월 자료 기준)로 국가별 1인당 GDP 순위에서 룩셈부르크, 스위스, 카타르에 이어 4위를 차지한 선진국이자 강대국입니다. 참고로 같은 통계자료에서 한국은 약 27000 불로 27일 을 차지했습니다. 어서 빨리 3만불 시대에 접어 들길 바랍니다.

노르웨이를 들여다 보기 앞써 인접국인 덴마크와 스웨덴을 먼저 들여다 볼까 합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자리 잡은 이 세 나라들은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이유로 서로서로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덴마크와 스웨덴에가 지배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이 두 나라의 역사를 먼저 말해야지만 노르웨이역사로 자연스레 연결이 될 것 같습니다.

바이킹 시대로 까지 들어가서 말하자면 너무 내용이 방대해지고 주제가 산으로 갈 것 같아 13세기 무렵 시작된 한자동맹부터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한자동맹은 쉽게 말하자면 힘쎈 상인 연합회입니다. 13-17세기에 독일 북쪽과 발트 해 연안에 있는 여러 도시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연맹으로 주로 해상 교통의 안전을 보장하고 공동 방호와 상권 확장 등을 목적으로 하는 동맹이었죠. 함대와 요새를 가지고 있었고 마치 연합국가로서 인상을 띠기도 합니다.

한자 동맹이 점점 힘이 커지고 발트해 방면으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북유럽 삼국의 상업에 위기감을 느낌니다. 그리하여 이에 대적할 연합회를 만들죠. 덴마크의 주도하에 노르웨이 스웨덴이 모여들었고 동군 연합하여 칼마르 동맹을 만듭니다. (이름이 칼마르 동맹인 이유는 스웨덴의 항구도시 칼마르에서 성립되었기 때문입니니다)

이 시기의 삼국을 한미일로 비교하자면 덴마크:미국, 스웨덴:일본, 노르웨이:한국 정도가 될 겁니다.
힘이 없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덴마크의 거의 종속이 되었죠.

그리고 이 동맹이란게 이익집단끼리 모인거라 느슨한 연합이었고 칼마르 동맹은 약 한 세기에 걸친 전쟁으로 와해가 됩니다. 

1520년 스웨덴 군을 격파한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2세가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귀족 80여명을 집단 학살하는 사건을 저지른다.이 사건을 이른바 "스톡홀름 대학살",스톡홀름의 피목욕'이라고 부른다.여기서 화를 면한 젊은 귀족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는 독립군을 구성하여 덴마크와 독립전쟁을 벌였고 결국 승리하여 1523년 구스타브 1세로 즉위 하여 스웨덴 왕국은 독립하였다.


 칼마르 동맹에서 스웨덴이 독립한 이래로, 종주국인 덴마크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그린란드페로 제도를 영토로 하는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은 구스타프 바사가 독립시킨 이후 스웨덴은 복수의 칼을 갈면서 국력을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스웨덴제국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고 또한 폴란드 일부지역도 획득 할 정도 위용을 떨쳤습니다. 이 때는 북방의 사자로 불리울 정도로 힘이 쎈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수십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은 쇠약해 졌고 결국 북방전쟁때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군에 대패를 당하여 약소국으로 전락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유럽 정세를 살피며 예전의 위용을 찾기위해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포착 됩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터지자 스웨덴은 즉각 나폴레옹 진영에 붙습니다.
이는 북방 전쟁 때 러시아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포석 이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군대는 러시아 군대에 대패하여 스웨덴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러시아는 1809년 스웨덴으로부터 핀란드 전체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때 부터 핀란드는 러시아의 공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한번 재기를 노리던 스웨덴은 1812년 영국을 중심으로한 대불동맹에 가담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인접국인 유틀란트 반도의 덴마크는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편에 섰고 전후 덴마크의 세력이 그 전보다 크게 약해졌습니다. 스웨덴은 이 틈을 타 1814년에 덴마크를 침략합니다. (국력을 비교하자면 덴마크보다는 스웨덴이 다소 우세했던 때라) 두 나라는 킬에서 강화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 조약에 따라 스웨덴은 덴마크로 부터 노르웨이를 받기로 합니다.

노르웨이는 이 조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독립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스웨덴 왕 카를14세는 노르웨이를 침략했고 노르웨이는 무릎을 꿇게됩니다.
스웨덴과 연합정부를 구성했지만 사실상 정복된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스웨덴은 핀란드를 러시아에 빼앗긴 대신에 노르웨이를 얻었고
노르웨이는 덴마크로부터 벗어나는 대신 스웨덴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됩니다.

스웨덴에서 러시아로 넘아간 핀란드도 열심히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스웨덴은 핀란드를 지배할 때 아주 가혹하게 굴지 않았지만 러시아는 잔혹할 정도록 포악하게 통치를해서
심지어 핀란드 의회가 자신의 법을 만들지도 못하게 할 정도여서 핀란드 민족주의자들은 더욱 거세게 투쟁을 벌였습니다.
1848년 혁명의 열기는 유럽을 뒤흔듭니다.
그 열기는 유틀란트 반도와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펴졌고 
이 지역의 자유주의자들은 입헌 군주제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1849년 덴마크와 스웨덴에 입헌군주제가 시작 됩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메이저 국가들보더 더 일찍 정치가 안정된 셈입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여러 국가 사이에 전쟁이 많이 터졌고
덴마크가 이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맙니다.
아무래도 유럽 대륙과 붙어 있는 데다 강대국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강대국들은 무엇보다 자원이 풍부한 덴마크 남부 도시를 노렸고
프레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대표적
덴마크는 1864년 이 두 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패함으로써 남부의 슐레스비히와 홀스타인 공국을 두 나라에 넘겨줘여 했습니다.
1905년 노르웨이가 독립한 이후로 스웨덴 역사에서 전쟁이란 단어는 사라졌고, 이후에 보통 선거권 확립과 함께 사회민주노동당이 장기 집권하면서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틀을 닦아냈다.

1905년 6월 노르웨이가 덴마크의 칼 왕자를 데려와 국왕 호콘 7세[3]로 추대하면서 전쟁의 위기에 빠지나 스웨덴이 전쟁을 포기[4]하면서 6월 7일 독립하게 되었다.
호콘 7세는 스웨덴 국왕 칼 15세의 외손자이다. 그러니 전쟁을 포기할 수 밖에. 따라서 노르웨이에서 호콘 7세를 왕으로 추대한 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