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노르웨이의 독립 역사에 대한 글을 써 보려합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 밀려 힘을 못 쓰던 이 나라는 어떻게 세계 부국으로 성장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가 될 수 있게 배경 지식 정도로써 글을 써 볼까 합니다.
노르웨이는 1인당 GDP는 69,712 달러(IMF 2016녀 4월 자료 기준)로 국가별 1인당 GDP 순위에서 룩셈부르크, 스위스, 카타르에 이어 4위를 차지한 선진국이자 강대국입니다. 참고로 같은 통계자료에서 한국은 약 27000 불로 27일 을 차지했습니다. 어서 빨리 3만불 시대에 접어 들길 바랍니다.
노르웨이를 들여다 보기 앞써 인접국인 덴마크와 스웨덴을 먼저 들여다 볼까 합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자리 잡은 이 세 나라들은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이유로 서로서로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덴마크와 스웨덴에가 지배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이 두 나라의 역사를 먼저 말해야지만 노르웨이역사로 자연스레 연결이 될 것 같습니다.
바이킹 시대로 까지 들어가서 말하자면 너무 내용이 방대해지고 주제가 산으로 갈 것 같아 13세기 무렵 시작된 한자동맹부터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한자동맹은 쉽게 말하자면 힘쎈 상인 연합회입니다. 13-17세기에 독일 북쪽과 발트 해 연안에 있는 여러 도시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연맹으로 주로 해상 교통의 안전을 보장하고 공동 방호와 상권 확장 등을 목적으로 하는 동맹이었죠. 함대와 요새를 가지고 있었고 마치 연합국가로서 인상을 띠기도 합니다.
한자 동맹이 점점 힘이 커지고 발트해 방면으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북유럽 삼국의 상업에 위기감을 느낌니다. 그리하여 이에 대적할 연합회를 만들죠. 덴마크의 주도하에 노르웨이 스웨덴이 모여들었고 동군 연합하여 칼마르 동맹을 만듭니다. (이름이 칼마르 동맹인 이유는 스웨덴의 항구도시 칼마르에서 성립되었기 때문입니니다)
이 시기의 삼국을 한미일로 비교하자면 덴마크:미국, 스웨덴:일본, 노르웨이:한국 정도가 될 겁니다.
힘이 없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덴마크의 거의 종속이 되었죠.
그리고 이 동맹이란게 이익집단끼리 모인거라 느슨한 연합이었고 칼마르 동맹은 약 한 세기에 걸친 전쟁으로 와해가 됩니다.
1520년 스웨덴 군을 격파한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2세가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귀족 80여명을 집단 학살하는 사건을 저지른다.이 사건을 이른바 "스톡홀름 대학살",스톡홀름의 피목욕'이라고 부른다.여기서 화를 면한 젊은 귀족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는 독립군을 구성하여 덴마크와 독립전쟁을 벌였고 결국 승리하여 1523년 구스타브 1세로 즉위 하여 스웨덴 왕국은 독립하였다.
그리고 스웨덴은 구스타프 바사가 독립시킨 이후 스웨덴은 복수의 칼을 갈면서 국력을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스웨덴제국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고 또한 폴란드 일부지역도 획득 할 정도 위용을 떨쳤습니다. 이 때는 북방의 사자로 불리울 정도로 힘이 쎈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수십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은 쇠약해 졌고 결국 북방전쟁때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군에 대패를 당하여 약소국으로 전락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유럽 정세를 살피며 예전의 위용을 찾기위해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포착 됩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터지자 스웨덴은 즉각 나폴레옹 진영에 붙습니다.
이는 북방 전쟁 때 러시아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포석 이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군대는 러시아 군대에 대패하여 스웨덴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러시아는 1809년 스웨덴으로부터 핀란드 전체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때 부터 핀란드는 러시아의 공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한번 재기를 노리던 스웨덴은 1812년 영국을 중심으로한 대불동맹에 가담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인접국인 유틀란트 반도의 덴마크는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편에 섰고 전후 덴마크의 세력이 그 전보다 크게 약해졌습니다. 스웨덴은 이 틈을 타 1814년에 덴마크를 침략합니다. (국력을 비교하자면 덴마크보다는 스웨덴이 다소 우세했던 때라) 두 나라는 킬에서 강화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 조약에 따라 스웨덴은 덴마크로 부터 노르웨이를 받기로 합니다.
노르웨이는 이 조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독립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스웨덴 왕 카를14세는 노르웨이를 침략했고 노르웨이는 무릎을 꿇게됩니다.
스웨덴과 연합정부를 구성했지만 사실상 정복된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스웨덴은 핀란드를 러시아에 빼앗긴 대신에 노르웨이를 얻었고
노르웨이는 덴마크로부터 벗어나는 대신 스웨덴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됩니다.
스웨덴에서 러시아로 넘아간 핀란드도 열심히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스웨덴은 핀란드를 지배할 때 아주 가혹하게 굴지 않았지만 러시아는 잔혹할 정도록 포악하게 통치를해서
심지어 핀란드 의회가 자신의 법을 만들지도 못하게 할 정도여서 핀란드 민족주의자들은 더욱 거세게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 열기는 유틀란트 반도와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펴졌고
이 지역의 자유주의자들은 입헌 군주제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1849년 덴마크와 스웨덴에 입헌군주제가 시작 됩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메이저 국가들보더 더 일찍 정치가 안정된 셈입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여러 국가 사이에 전쟁이 많이 터졌고
아무래도 유럽 대륙과 붙어 있는 데다 강대국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강대국들은 무엇보다 자원이 풍부한 덴마크 남부 도시를 노렸고
덴마크는 1864년 이 두 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패함으로써 남부의 슐레스비히와 홀스타인 공국을 두 나라에 넘겨줘여 했습니다.
1905년 노르웨이가 독립한 이후로 스웨덴 역사에서 전쟁이란 단어는 사라졌고, 이후에 보통 선거권 확립과 함께 사회민주노동당이 장기 집권하면서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틀을 닦아냈다.
1905년 6월 노르웨이가 덴마크의 칼 왕자를 데려와 국왕 호콘 7세[3]로 추대하면서 전쟁의 위기에 빠지나 스웨덴이 전쟁을 포기[4]하면서 6월 7일 독립하게 되었다.
호콘 7세는 스웨덴 국왕 칼 15세의 외손자이다. 그러니 전쟁을 포기할 수 밖에. 따라서 노르웨이에서 호콘 7세를 왕으로 추대한 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