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3월 26일 일요일

노르웨이
노르웨이는 유럽에서 스위스와 거의 대등할 정도로 경제가 좋으며 부정부패도 적은 개념국가다. 하지만 이미 가입 결정을 하고도 국민투표 부결로 두 번이나 걷어찬 경력도 있다.
무엇보다 가장 가입하기 어려운 이유는 노르웨이의 경제 수익에 관련된 것이다. 노르웨이는 수산업이 자국의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유럽 연합에 가입하면 회원국의 경제수익 일정부분은 유럽 연합국에 골고루 분배되어야 한다.라는 조항을 지켜야 하는데, 이 조항이 자국의 경제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은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거기에 상당한 수준의 어업량 쿼터 제한과 배타적 경제 수역을 다른 회원국들과 공유해야 하기 때문에 이 점을 가장 탐탁치 않게 여기고 있다. 
노르웨이 : "마음껏 잡지도 못하고 거기다 일터까지 나눠갖자고?? 내가 그런 미친 짓을 왜 해!?"
거기다 
북해 잭팟이 터지기 이전의 노르웨이와 수산업에서는 대등한 경쟁력이 있었던 포르투갈과 스페인[14]이 이러한 이득을 버리면서까지 가입했는데 이 조항으로 인하여 결국 두 나라의 경제가 어떤 꼴이 되었는지 노르웨이는 잘 알고 있고, 유럽 연합에 가입한다면 당연히 노르웨이의 수산업 관련 수입을 유럽 연합에도 나눠주어야 하므로 노르웨이가 가입하겠다고 표명하지 않은 이상 가입할 가능성이 현재로선 없다. 광대한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진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이 어업 생산 쿼터로 자국내 수산물 수요를 감당 못해 노르웨이에서 생선을 수입해다 먹으니 노르웨이 입장에서는 더더욱 가입이 절실하지 않은 상황.
물론 노르웨이에서도 수산물 및 석유 자원의 고갈 대비 등을 이유로 자국의 EU 가입을 지지, 주장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예를 들어 옌슨 스톨텐베르그 전 노르웨이 총리의 경우 노르웨이의 EU 회원국 가입을 지지하고 있다.

http://blue2sky.tistory.com/1317

http://www.inven.co.kr/board/powerbbs.php?come_idx=2097&l=422368

http://blog.hani.co.kr/gategateparagate/75171

노르웨이 제헌절 5월 17일




5월 17일은 노르웨이의 '국가의 날' 로서 1814년에 Eidsvoll에서 
최초로 헌법이 제정된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참고로 노르웨이는 유럽에서 최초이자 세계에서 두 번째로 제헌절을 공포한 나라입니다. 

이 헌법 제정으로 노르웨이는 덴마크의 지배에서 독립하기를 희망했지만... 
힘없는 약소국이 마음 같이 되는 일이 잘 있나요?

같은 해에 덴마크와의 거래?에 성공한 스웨덴에게 병합되고 맙니다. 
물론 저항했지만 스웨덴의 침략으로 무릎을 꿇을 수 밖에 없었죠.
그래도 스웨덴이 양반인지라 노르웨이와 스웨덴과 연합정부를 꾸렸지만 
스웨덴에 정복 상태임을 부인 할 수는 없었습니다. 

 노르웨이 헌법은 스웨덴과의 병합 후에도 실효를 유지했고 
1905년 6월 노르웨이가 덴마크의 칼 왕자를 데려와 국왕 호콘 7세로 추대하면서 
완전한 독립을 다시 꾀했습니다. 
이로 인해 전쟁의 위기에 다시금 빠지나 했으나 
스웨덴이 전쟁을 포기하면서 6월 7일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됩니다. 
사실 호콘 7세는 스웨덴 국왕 칼 15세의 외손자입니다. 
혈연으로 인해 전쟁을 피한 경우네요. 
이 것을 알고 호콘 7세를 왕으로 추대한건지는 모르겠지만 결과론적으로는 신의 한 수인 셈이였네요.


 5월 17일을 처음으로 기념한 것은 1840년대였는데
 노르웨이 낭만주의 운동을 이끈 시인 헨리크 아르놀 베르겔란 (Henrik Arnold Wergeland) 
이 이날을 국경일로 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나라의 미래인 어린이들이 나라의 자랑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이 날은 화려한 의전이나 힘과 권위를 과시하는 날이 아니라
 어린이들을 위한 기념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5월 17일은 어린이들에게 바쳐진 날이어서 더욱 특별한 것 같습니다.

5월 17일이면 노르웨이 국민들은 자랑스러운 노르웨이 전통에 대한 자부심을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행사에 참여하는데
행사는 보통 밴드들이 꾸미는 대규모 퍼레이드로 시작 됩니다.

 노르웨이 전역에서 바네토그 (Barnetog: 어린이 기차) 이라고 불리는 퍼레이드를 보기 위해 

국기를 들고 거리와 광장으로 모입니다.

오슬로의 경우는 또한 왕과 왕가 사람들 또한 시민들에게 인사를 나누기 위해 왕궁에서 나오는데 
많은 국민들이 국기를 흔들며 왕가 사람들을 맞이하면 환호합니다.

베르겐의 경우 만화 공연단과 북 치는 밴드가 퍼레이드에 포함이 됩니다. 그리고 조정경기와 저녁에는 불꽃 놀이도 있습니다.

이 처럼 도시마다 제헌절을 기념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고 소방관, 스포츠팀, 학생회 등과 같은 다양한 조직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퍼레이드를 준비합니다.


어린이들과 어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부나(Bunad)라고 불리는 전통의상을 입는데
 이날의 행사을 더욱 그림 같은 풍경으로 만드는데 일조합니다.

부나는 지역에 때라 다채로운 색깔과 스타일이 있습니다.

여성들은 마루에 끌리는 길이의 화려한 색감이 있는 모직 드레스와 하얀색 셔츠, 앞치마, 정교한 레이스와 자수가 놓인 코르셋을 입고 액세서리로 단장하고.
소년들은 아버지의 복장에 맞춰 무릎까지 오는 양말과 플러스 포스 바지와 조끼를 입습니다.
반면에 루스(RUSS) 라고 불리는 고등학교 졸업생들은 이 날에 맞춰 빨갛고 파란색의 작업복을  입습니다.

한편 이 날은 어디를 가든지 아이스크림 판매상으로 북적한데.
 5월17일은 어린이 모두가 먹고 싶은 만큼 아이스크림을 먹어도 되는 날 이기도 합니다.
이 에 보통 5배에서 10배는 높은 판매율을 기록한데고 하네요.


칼마르 동맹

칼마르 동맹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winlee96&logNo=220788716962

노르웨이의 독립 역사


오늘은 노르웨이의 독립 역사에 대한 글을 써 보려합니다.

덴마크와 스웨덴에 밀려 힘을 못 쓰던 이 나라는 어떻게 세계 부국으로 성장 할 수 있는지에 대해 이해가 될 수 있게 배경 지식 정도로써 글을 써 볼까 합니다.

노르웨이는 1인당 GDP는  69,712 달러(IMF 2016녀 4월 자료 기준)로 국가별 1인당 GDP 순위에서 룩셈부르크, 스위스, 카타르에 이어 4위를 차지한 선진국이자 강대국입니다. 참고로 같은 통계자료에서 한국은 약 27000 불로 27일 을 차지했습니다. 어서 빨리 3만불 시대에 접어 들길 바랍니다.

노르웨이를 들여다 보기 앞써 인접국인 덴마크와 스웨덴을 먼저 들여다 볼까 합니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자리 잡은 이 세 나라들은 국경을 서로 맞대고 있는 이유로 서로서로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덴마크와 스웨덴에가 지배 당한 역사를 가지고 있어서 이 두 나라의 역사를 먼저 말해야지만 노르웨이역사로 자연스레 연결이 될 것 같습니다.

바이킹 시대로 까지 들어가서 말하자면 너무 내용이 방대해지고 주제가 산으로 갈 것 같아 13세기 무렵 시작된 한자동맹부터 이야기를 풀어 볼까 합니다.

한자동맹은 쉽게 말하자면 힘쎈 상인 연합회입니다. 13-17세기에 독일 북쪽과 발트 해 연안에 있는 여러 도시 사이에서 이루어졌던 연맹으로 주로 해상 교통의 안전을 보장하고 공동 방호와 상권 확장 등을 목적으로 하는 동맹이었죠. 함대와 요새를 가지고 있었고 마치 연합국가로서 인상을 띠기도 합니다.

한자 동맹이 점점 힘이 커지고 발트해 방면으로 영향력을 확장해 나가자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북유럽 삼국의 상업에 위기감을 느낌니다. 그리하여 이에 대적할 연합회를 만들죠. 덴마크의 주도하에 노르웨이 스웨덴이 모여들었고 동군 연합하여 칼마르 동맹을 만듭니다. (이름이 칼마르 동맹인 이유는 스웨덴의 항구도시 칼마르에서 성립되었기 때문입니니다)

이 시기의 삼국을 한미일로 비교하자면 덴마크:미국, 스웨덴:일본, 노르웨이:한국 정도가 될 겁니다.
힘이 없는 노르웨이와 스웨덴은 덴마크의 거의 종속이 되었죠.

그리고 이 동맹이란게 이익집단끼리 모인거라 느슨한 연합이었고 칼마르 동맹은 약 한 세기에 걸친 전쟁으로 와해가 됩니다. 

1520년 스웨덴 군을 격파한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2세가 스톡홀름에서 스웨덴 귀족 80여명을 집단 학살하는 사건을 저지른다.이 사건을 이른바 "스톡홀름 대학살",스톡홀름의 피목욕'이라고 부른다.여기서 화를 면한 젊은 귀족 구스타브 바사(Gustav Vasa)는 독립군을 구성하여 덴마크와 독립전쟁을 벌였고 결국 승리하여 1523년 구스타브 1세로 즉위 하여 스웨덴 왕국은 독립하였다.


 칼마르 동맹에서 스웨덴이 독립한 이래로, 종주국인 덴마크는 노르웨이, 아이슬란드그린란드페로 제도를 영토로 하는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웨덴은 구스타프 바사가 독립시킨 이후 스웨덴은 복수의 칼을 갈면서 국력을 축적하기 시작합니다.

스웨덴제국은 핀란드와 에스토니아 영토를 소유하고 있었고 또한 폴란드 일부지역도 획득 할 정도 위용을 떨쳤습니다. 이 때는 북방의 사자로 불리울 정도로 힘이 쎈 나라였습니다.
하지만 수십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국력은 쇠약해 졌고 결국 북방전쟁때 표트르 대제의 러시아군에 대패를 당하여 약소국으로 전락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주변 유럽 정세를 살피며 예전의 위용을 찾기위해 눈치를 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가 포착 됩니다. 나폴레옹 전쟁이 터지자 스웨덴은 즉각 나폴레옹 진영에 붙습니다.
이는 북방 전쟁 때 러시아에게 빼앗긴 영토를 되찾기 위한 포석 이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 군대는 러시아 군대에 대패하여 스웨덴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됩니다.

러시아는 1809년 스웨덴으로부터 핀란드 전체를 빼앗아 버렸습니다. 이때 부터 핀란드는 러시아의 공국이 되어버렸습니다.

또 한번 재기를 노리던 스웨덴은 1812년 영국을 중심으로한 대불동맹에 가담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인접국인 유틀란트 반도의 덴마크는 나폴레옹 전쟁 때 프랑스편에 섰고 전후 덴마크의 세력이 그 전보다 크게 약해졌습니다. 스웨덴은 이 틈을 타 1814년에 덴마크를 침략합니다. (국력을 비교하자면 덴마크보다는 스웨덴이 다소 우세했던 때라) 두 나라는 킬에서 강화 조약을 체결합니다.
이 조약에 따라 스웨덴은 덴마크로 부터 노르웨이를 받기로 합니다.

노르웨이는 이 조약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독립을 선포합니다.
하지만 스웨덴 왕 카를14세는 노르웨이를 침략했고 노르웨이는 무릎을 꿇게됩니다.
스웨덴과 연합정부를 구성했지만 사실상 정복된거나 다름 없었습니다. 
스웨덴은 핀란드를 러시아에 빼앗긴 대신에 노르웨이를 얻었고
노르웨이는 덴마크로부터 벗어나는 대신 스웨덴의 손아귀로 들어가게 됩니다.

스웨덴에서 러시아로 넘아간 핀란드도 열심히 독립운동을 펼쳤습니다.
스웨덴은 핀란드를 지배할 때 아주 가혹하게 굴지 않았지만 러시아는 잔혹할 정도록 포악하게 통치를해서
심지어 핀란드 의회가 자신의 법을 만들지도 못하게 할 정도여서 핀란드 민족주의자들은 더욱 거세게 투쟁을 벌였습니다.
1848년 혁명의 열기는 유럽을 뒤흔듭니다.
그 열기는 유틀란트 반도와 스칸디나비아 반도로 펴졌고 
이 지역의 자유주의자들은 입헌 군주제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였고 
그 결과 1849년 덴마크와 스웨덴에 입헌군주제가 시작 됩니다.
독일 오스트리아 등 메이저 국가들보더 더 일찍 정치가 안정된 셈입니다.
19세기 중반 이후 독일, 오스트리아, 프랑스 등 여러 국가 사이에 전쟁이 많이 터졌고
덴마크가 이 소용돌이에 휩싸이고 맙니다.
아무래도 유럽 대륙과 붙어 있는 데다 강대국들과 국경을 맞대고 있어서..
강대국들은 무엇보다 자원이 풍부한 덴마크 남부 도시를 노렸고
프레이센과 오스트리아가 대표적
덴마크는 1864년 이 두 나라와 전쟁을 벌였고, 패함으로써 남부의 슐레스비히와 홀스타인 공국을 두 나라에 넘겨줘여 했습니다.
1905년 노르웨이가 독립한 이후로 스웨덴 역사에서 전쟁이란 단어는 사라졌고, 이후에 보통 선거권 확립과 함께 사회민주노동당이 장기 집권하면서 스웨덴식 복지국가의 틀을 닦아냈다.

1905년 6월 노르웨이가 덴마크의 칼 왕자를 데려와 국왕 호콘 7세[3]로 추대하면서 전쟁의 위기에 빠지나 스웨덴이 전쟁을 포기[4]하면서 6월 7일 독립하게 되었다.
호콘 7세는 스웨덴 국왕 칼 15세의 외손자이다. 그러니 전쟁을 포기할 수 밖에. 따라서 노르웨이에서 호콘 7세를 왕으로 추대한 건 결과적으로 신의 한 수인 셈이다

노르웨이 화폐

오늘은 노르웨이 화폐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EU 가입국인 아닌 노르웨이는 자국 화폐인 노르웨이 크로네라는 화폐를 쓰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르웨이 화폐인 크로네는
인접국인 스웨덴이랑 핀란드의 마트에서도 사용가능 합니다.

크로네 보다 작은 단위로 øre가 있고 100øre가 1 Krone 가치를 가지고 있는데
실상 øre의 가치가 너무 낮아 화폐로는 거의 쓰이지 는 않습니다. 
현재 거의 전자 결제에서만 쓰이는 정도 입니다.

노르웨이 화폐는 노르웨이 중앙 은행에서 발행을 하고
사용하는 지폐와 동전의 종류는 다음과 같습니다.

Notes: 1000, 500, 200, 100, 50
Coins: 20, 10, 5, 1
하지만 실제로 노르웨이에서 현금을 쓸 일이 거의 없습니다.
카드 사용이 아주 빈번하고 발달한 나라여서
어느 지역 어느 조그만한 상점에 가셔도 카드 사용이 가능합니다.
심지어 노상판매나 좌판에서도 카드 리더기를 구비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리고 한국 처럼 소액결제한다고 눈치 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10녹짜리를 구매하셔도 카드 결제 가능합니다.

단, 한 가지 주의 하실 점은

종종 직불 카드만 사용 가능한 매장이 있습니다. (신용카드 사용 불가)

제 경험상으로는 작은 식당을 이용할 때 직불카드밖에 안되었습니다.

대부분의 마트나 슈퍼마켓, 커피숍, 체인점들은 모든 카드를 다 받아 줍니다.

노르웨이는 주로 비자카드랑 마스터카드를 제일 많이 사용합니다.

둘 중 하나를 챙겨 오시는게 노르웨이 여행에 편할실것 같아요.

혹 현금인출을 하셔야 되면, 주변 은행이나 편의점, 쇼핑몰에 
Minibank 라 적힌 표지판을 찾으시면 됩니다. 
Minibank 한국식으로 ATM 입니다.

혹시, 마트나 편의점에 Minibank표지판이 있어 들어갔는데 ATM 기계가 안 보인다 하지면
점원한테 가셔서 카드를 들이 밀면서 현금 인출 해주셔요 하시면 됩니다.

계산대 (포스 라고 하나요) 에서 인출 해 줄 겁니다.

2017년 여름 부터 노르웨이 지폐가 새로운 신권으로 바뀝니다.
신권 관련 포스트를 참조해주세요.

2017년 3월 8일 수요일

노르웨이 이민

노르웨이 이민

에 관해 글을 써 볼까 합니다.

현재 한국은 높은 실업률, 낮은 청년 취업률등 심각한 사회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믿었던 나라가 제 국민을 제대로 지켜주지도 못 하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한국에 이민붐이 다시금 일어 나는 것 같습니다.

이민 희망 국으로는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호주 순으로 인기가 이어져 왔는데

지금은 북유럽 이민이 주목을 받는 듯 합니다.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복지 제도도 훌륭 하거니와 살기 좋은 나라 행복한 나라 순위에
항상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는 연유인지
북유럽의 이민률이 사실상 올라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노르웨이는 EU 소속 국이 아니지만 셍겐 조약에 포함 되어 있는 나라여서

한국 여권을 가지고 있으면  따로 비자 신청 없이 여행을 올 수 있는 나라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노르웨이 이민 정책을 들여다 보면 노르웨이 이민은 쉽지가 않습니다.

특히, 한국은 EU/EEC 소속국이 아니므로 한국 국민으로서

노르웨이 이민을 생각 중이라면 크게 다음과 같은 두가지 방법만 가능합니다.

첫째, Skilled worker 즉 취업을 통한 이민

노르웨이에 소재를 한 회사에 취직을 하여 취업 비자를 받는 것입니다.

노르웨이는 산유국으로 석유 에너지 조선 해양 엔지니어링 산업들이 발달한 나라입니다.

따라서 전공이 위 산업과 관련이 있다면 취업이민을 도전해 볼만 합니다.

실제로도 해양, 에너지 관련 회사들은 인터네이션날 회사가 대분분이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비중이 상당합니다.

그리고 수산업, 바이오 신재생 에너지 산업도 강한 면모를 보이나
 이 분야로는 외국인 취업 비율이 높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작년부터 이어진 유가 급락으로 현재 노르웨이 경기가 현재 좋은 상황은 아닙닌다.
에너지 사업에 관련된 거의 모든 회사들이 구조조정을 진행하여
현 시점은 취업의 문이 다른 때에 비해 많이 좁아 졌습니다.

그리고 취업이민의 가장 큰 걸린돌은 사실 언어문제 일것 같습니다.

이민을 생각한다면 가장 먼저 염두해 두어야 하는게 언어인데...

공업관련 산업으로 취직을 한다면 영어만을 구사 할 줄 알아도 취업이 가능하지만

다른 직종은 보크말을 구사할 줄 알아야지 취업이 가능합니다.

참고로 노르웨이는 자국 공용어(보크몰)가 있는 나라이고
국민의 80%가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 정도로 바이어링구 수준이 높은 나라입니다.


하나 더 염두해야 할 것은

EU 청년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르웨이는 EU 소속국은 아니지만 EU에 분담금을 내고 있고
고용시작을 EU 소속국에 개방하고 있는
준 EU 국가로도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추운 겨울과 살인 적인 물가만 빼고 보면
EU 국민들 한테도 노르웨이는 매력적인 이민 국가 임으로
많은 유럽 청년들이 노르웨이 고용시장에 문을 두드리고 있는 실정입니다.

영어를 자국어로 사용하는 나라는 거의 드물지만
고용시장에 참여하는 청년들은 기본적으로 바이어링구 능력치가 상당한 수준임으로
한국인으로서 언어는 상당부분 취약점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노르웨이로 유학을 와서 졸업 후 취업을 노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도 합니다.


둘째, family immigration 가족 결합을 위한 위민

이 방법은 노르웨이 국적을 소지하고 있는 사람 또는
 거주허가(취업 비자 혹은 영주권 소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랑 약혼 혹은 혼인을 한 배우자
그리고 그들의 직계 가족 (부모는 포함 안됨) 들만 해당이 됩니다.


이 외에도 망명 이민도 있으나
한국 국민들한테는 거의 해당이 안 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참고로...

취업 비자나 가족 비자를 얻고 노르웨이에서 연이어 3년을 산다면
영주권 취득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언어 수업이수/ 일정수준의 언어 시험 합격이 조건)

취업/가족 비자만을 들고 있어도
기본적인 복지혜택 (출산/육아/의료/교육)은 다 받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실업 급여는 영주권 소지자에게 해당됩니다.

사직을 하고 몇 달간의 재취업 기간동안 구직에 실패하면
취업비자는 더이상 유효하지 않게 됨으로 추방을 당 할 수 있습니다.

노르웨이는 이민은 다른 북유럽에 비해 이민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기는 하나.
상대적인 것이지 절대적으로는 쉽지가 않습니다.

2017년 3월 6일 월요일

2012년 대선 결과가 가져온 나의 인생 전환점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부산에서만 공부를 하고 또 부산에서 직장을 구하게되어
 부산 생활만 30년 넘게 이어오고 있는 부산 토박이 였다.
결혼을 하면서 신부 직장 근처인 양산으로 신혼집을 구하게 되면서 부산을 가까으로 벗어나게 되었지만
도진개진이라고... 직장이 여전히 부산이고.... 신혼집에서 버스타고 20분이면 부산에 도착할 수도 있고...
사실상 여전히 부산에서 살고있는 셈이였다.

내 인생에서 부산을 벗어난 시기는 군생활 2년 
용인에서 알바 생활 3개월
어학 연수 핑계로 떠난 해외체류 8개월이 다 였다.
이런 내가 지금 노르웨이에 살고 있는걸 돌이켜 보면
18대 대통령 선거결과가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신혼 생활 1년째 되는 날 재 18대 대통령 선거가 코앞에 다가 오고 있었다.
 나꼼수 열혈 청취자였던 나는 이 맘때즈음 정치에 눈을 뜨게 되었고
칭구들이랑 술만 마시면 안주삼아 쥐박이를 물고 뜯고하던 때라 
다가오는 대선 판도를 아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선거가 다가올 무렵 지지도가 엎치락 뒤치락 하면서 
시소 게임이 계속 되고 있었다.
어느덧 대선날은 다가왔고 그 결과가 무척이나 궁금하여 집밖에도 안나가고
와이프와 난 선거개표 방송을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출구 조사에서 내가 지지한 후보가 유력할 것이라고 하는 각종 언론 조사가 흘러 나왔다.
당연한 결과고 나는 대통령은 정해졌다면서 기뻐라 했고 
그럴 일이 없겠지만 만일에 하나라도 
 저 멍청한 XX가 대통령이 된다면 난 이민 가버릴 것이라고 막말을 쏟아 내면
내가 지지한 후보의 당선을 당연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이걸 왠걸 뚜껑이 열어보니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정말이지 지난 5년도 불행했는데 다가오는 5년 마저 불행하면 안된다하면 간절히 빌었건만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는 것인지.....

그래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그리고 얼마 후 
나에게 노르웨이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왔다.
내 뱉은 말을 실천이라도 하듯 
그 기회를 잡아 버렸다.

물론 나의 노르웨이행을 결정하는데 있어서 대선 결과가 다가 아니다.
이 당시의 나는 직장생활의 메너리즘을 느끼고 있었고 
그 때문인지 새로운 경험에 대한 동경과 열망이 마음 속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와이프의 임신 소식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육아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라는 막연한 생각 등등이 
노르웨이행을 결정하게 된것이다.

노르웨이는 어떤 나라?

노르웨이의 원래 이름은 노르웨이 공용어인 보크몰로는 "Kongeriket Norge" 이고 약칭으로 NORGE 입니다.

노르웨이 이름의 기원은 약 800년도에서 왔다고 전해지는데... 
Nor + Way 가 합쳐진 단어로 Way 는 지역을 뜻하는 Region 이란 단어의 같은 기원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즉, 이름 그대로 지리적으로 (러시아를 제외하고는..) 제일 북쪽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아래는 노르웨이를 정치 경제 교육 복지 등 다방면으로 잘 소개해 놓은 페이지입니다.
노르웨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알고 싶은 분은 클릭해주세요.


제가 살면서 느낀 노르웨이의 장점이자 강점은 세가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노르웨이는 정말 인구 밀도가 낮다는 것입니다.
국민적 성향도 개인 프라이버시를 중요시 하기도 하지만 여긴 붐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쇼핑몰을 가도 지하철을 타도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는 것을 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한국에서 가지고 있던 스트레스 (사람과 사람사이에 대한 공간 지수가 지극히 낮아서 생기는 스트레스?정확한 용어를 모르겠지만)가 거의 없습니다.

참고로 한국의 인구밀도는 214개 국 중 23위로 밀도 505 (명/km2) 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아래 비고란을 보면 면적이 1만 km2를 넘는 나라들 중 
방글라데시, 대만 레바논에 이어 세계 4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은 인구 밀도가 높습니다.


반면에 노르웨이는 241 개국중 213위로 밀도가 13 (명/km2)에 불가합니다.





둘째, 노르웨이는 제조업이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아 (경제적으로는 단점이지만...)
자연이 여전히 깨끗하고 잘 보전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라 시민들과 정치권은 자연을 더욱 잘 유지 보전하기 위해서 
항상 고민을 합니다 (친 환경정책을 계속 발의하고 입법하려 합니다.)
다만 북유럽 관광객의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여서 
그 여파로 주요 여행지들이 예전에 비해 오염이 되었다는 기사가 종종 눈에 띄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르웨이는 신뢰로 형성된 사회이며 
법치 민주주위가 제대로 시행이 잘 되는 나라입니다.
여기서는 모든 것이 투명합니다.
정부 고위 관료 부터 일반 국민들 할 것 없이 모든 것이 투명합니다.
예를 들면 누가 얼마만큼의 재산을 가지고 있는지 누구나 다 알아낼 수도 있고,
전화 번호 정보만 있으면 누구인지 어디서 사는 지도 알아 낼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를 악용하는 사람도 없고 자신들 만의 신뢰를 계속 유지 시켜 나아갑니다.

준법 정신도 뛰어난데...여기서 운전을 해보면 
노르웨이의 국민성민 준법정신을 실감 해볼수 있습니다.
여기 운전자들은 아무리 급해도 끼어들기나 새치기를 하지 않습니다. 
급출발 급정거도 추월차선에서 주행도을 거의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도로법규를 정말 잘 지킵니다. 
게다가 클락션을 거의 울리지 않습니다.

정말이지 부럽기도하고 본 받고 싶은 국민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입니다.

Intro...

시작하며....

2017년 지금은 노르웨이는 한국에서 제법 잘 알려진 나라이다.
노르웨이란? 라는 질문을 했을때 많은 사람들이 아래의 정보 정도는 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이킹의 후예들이 세운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위치한 작은 나라 북유럽 국가 중 하나이며 , 백야와 극야 그리고 오로라가 있는 나라
기름이 나는 산유국,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국부 펀드를 가지고 있는 부자나라, 행복지수 상위권에 항상 랭킹이 되는 나라, 복지제도가 잘 갖춰져있는 복지 국가." 


비정상회담에 출연한 노르웨이 청년인 니콜라이 얀센도 노르웨이를 알리는 데 한 몫도 했고

OECD중 한국은 몇 위? 라는 신문 기사에서도 좋은 아이템에 대해서는 항상 상위권을 랭킹하는 노르웨이를 자주 언급이 되었고
정치권에서도 북유럽 복지 모델을 따라야 한다 이야기 하면서 노르웨이 제도를 몇 번 언급을 하였다.



하지만 내가 노르웨이로 넘어오는 2013년에는 노르웨이는 여전히 많이 생소한 나라였다.

북유럽의 트렌드가 이 시기도 있었으나, 스웨덴 덴마크가 주된 나라였다.
내가 노르웨이 간다고 이야기를 하면 그래 뉴질랜드 잘 다녀와 라고 이야기 하는 녀석들도 있었을 정도로 노르웨이는 여전히 나에게 한국에 낫선 나라였다.


물론 나도 노르웨이로 가기로 결심만했지... 항상 겨울만 있는 추운 곳일거라나는 망상만 있을든 이나라에 대한 기본 지식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여기로 넘어왔고 노르웨이에서 지낸지가 벌써 4년이 넘었다 (2013년 02년부터 현재까지...) 어느 정도 여기 서의  삶의 기틀을 잡은것 같다.



여기서 살면서 경험하고 느꼈던 사실들을 하나하나씩 풀어 낼까한다.


굳이 주제를 고르라 하면 노르웨이 삶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여기로 넘어 오고싶은 분들한테는 도움이 될만한 정보들도 올릴려고 한다.

노르웨이 이민이나 노르웨이 취업 같은 정보가 되지 않을까 싶다.

첫글이라 두서 없이 적었지만 계속 써 나가도 보면 노르웨이 나의 생활처럼 이 블로그도 기틀이 다져지겠지란 생각으로 블로그를 시작해 나갈련다.